난 한때 비디오 게임을 무척 좋아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안 좋아한다기 보단 별로 관심이 없지. 그게 그건가? ㅋㅋ 게임을 멀리 하게 된 이유는 몇가지 된다. 게임 할 시간도 없고, 돈도 아깝고, 결정적으로 한번 맘 먹고 해 보려고 해도 재미가 없다. 아무튼, 여기에는 내가 비디오 게임에 대해 가진 추억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볼까 한다.
비디오 게임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오락실이었다. 대략 국민학교 1학년 때 쯤부터 오락실을 들락거린 것 같다. 이때부터 더블 드레곤이니 뭐니 이것저것 많이 했다. 오락실에 있다가 부모님께 잡혀서 끌려간 것도 여러번인데 왜 부모님들은 오락실을 싫어했을까?
이 무렵에 동네 병원 원장 아들과 친해진 적이 있다. 그 집 아이가 갖고 있던 쌍안경 형태의 게임기는 나에겐 신세계였다. 아마도 무슨 탱크 같은 게 앞으로 나갔던 것 같은데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아마 내가 본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 아니었나 싶다. 이때 애네집에서 처음 먹어 본 식빵으로 만든 피자는 나에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피자 자체를 모르던 시절이었으니까.
오오, 구글링으로 찾아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래는 나랑 같은 추억을 가진 놈이 그린 듯. ㅋㅋㅋㅋㅋ
시간이 흐르고 내 나이 국민학교 4학년 무렵쯤이었나?
미국에 가신 아버지가 놀라운 선물을 보내 왔다. 바로 NES 라고 부르는 게임기였다.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의 약자로서 그 당시 아마 미국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던 시기였을거다. 이 당시 NES의 인기는 엄청나서 닌텐도는 ‘가정용 게임기’ 의 대명사처럼 불리기도 했다지. 아무튼, NES는 곧 형과 나의 공통분모가 되었으며 우리 형제의 우애 혹은 경쟁의 장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당시 우리집 형편을 생각하면 일대 혁신적인 수준의 장비였다고 할 수 있다. ㅋㅋ 이건 뭐 전자계산기도 없던 집에 컴퓨터를 들인 수준이랄까? 그 당시에 애들은 겜보이, 재믹스, 좀 더 나아가면 패밀리나 했지, 어디 어메리칸 본토 NES 를 구경이나 했겠는가…. 라곤 하지만 사실 NES 쪽이 훨씬 게임 구하기가 어려워서 ‘컨버터’ 라는 장비를 이용해서 패밀리 게임팩을 구해다가 했던 게 사실이다.
컨버터는 요렇게 생김 (링크)
이 당시엔 뭔 슈퍼마리오를 깨고 또 깨고, 그 단순한 DUCK HUNT를 수십판씩 하던 무렵이다. 그러고보니 게임오버 됐을 비웃던 강아지를 총으로 쏠 수 있게 만들었다면 좀 더 인기를 끌지 않았을까?
우리집의 NES가 슬슬 흥미의 대상에서 벗어날 무렵에서야, 현대가 정식으로 수입한 ‘컴보이’ 라는 제품이 들어 오기도 했다. 광고 음악은 아직도 기억난다. ‘슈퍼 마리오 버블 버블 메가맨3 닌자 거북이, 컴보이! 우리들 기분을 잘 안다! 컴보이한텐 못 당하겠다니까! 으아악! 펑’ ㅋㅋㅋㅋ
컴보이의 시대가 저물어갈 무렵, 새로운 기계가 등장하여 전세계를 열광케 했다. ㅋㅋㅋ
이름하야 일본에선 ‘슈퍼 패미컴’ 미국에선 ‘슈퍼 NES’ 이라 불리는 드림머신이었다. 물론, 우리에게 그 게임기를 살 돈 따위는 없었고 용산에 가서 군침이나 흘리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 당시 우리 옆집에 살던 형은 슈퍼 겜보이(메가 드라이브)를 어디서 구해 와서 나와 형의 군침을 흘리게 만들기도 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없던 시절 게임월드와 게임뉴스라는 게임 잡지는 우리가 비디오 게임 세계를 바라보는 눈 그 자체였다. 슈퍼컴보이와 메가드라이브 CD, PC Engine 등의 게임기들이 보여주는 비주얼은 활자 매체 속에서도 빛나는 그 무엇이었다. 지금도 비디오 게임이라 불리는 걸 보면 시각적인 요소가 애시당초 이 게임들이 보여줘야 할 최고의 과제이니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시간이 흘러서 내 국민학교 6학년 무렵 우리는 대전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 그러고 얼마 안 있던 어느날 형이 나에게 돈이 생겼다며 게임기를 사오라는 말을 했다. ㅋㅋㅋㅋㅋㅋㅋ 어디서 생긴거냐면. 줏은 거였다. 어쩌다 운 좋게 20만원 가량을 줏게 됐는데 그 돈으로 슈퍼 컴보이를 사오라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호쾌할 결정이었다.
바로 난 그 돈으로 현찰 박치기로 게임기를 구매했다. 그때 주인 아줌마가 팩 살돈이 없다고 하자 닌자 거북이를 빌려줬는데, 꼭 갖다 준다고 해놓고 다신 찾아가지 않았다. 아줌마 미안해요. ㅋㅋㅋㅋㅋㅋ 어디서 뭐 하시나요.
‘오락실의 감동을 집에서’
그렇게, 슈퍼컴보이를 신의 도움으로 손에 넣게 된 우리는 정말 열심히 했다. 이때가 또 수많은 게이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황금기여서 파이널 판타지 5, 라이브 어 라이브, 크로노 트리거 등등 주옥같은 게임들을 즐겨 볼 수 있었다. 물론, 최고의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2를 빼놓을 수 없다. 이 게임 하나만으로도 슈퍼컴보이의 가치는 충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엄청나게 플레이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SFC도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가고, 뒤를 이어 세가 새턴, 플레이 스테이션, 닌텐도 64 등이 등장했다. 하지만, 형과 나는 돈이 없었다. 더 이상 게임을 하지 못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마 이 때 후속기종도 샀더라면 지금쯤은 자칭 게임 마니아, 타칭 오타쿠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몇년을 쉬다가 다시 구입하게 된 게 바로 PS2다.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추억하는 게임기가 아닐까? 이것도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했다. 위닝 일레븐, 철권, 파이널 판타지 10 등 굵직한 게임들도 많았던 시기였다.
이때 형과 나는 불법 복제 게임 구동을 가능케 하는 장치를 구매했다. 이름이 참 멋지다. ‘메시아 칩’ ㅋㅋㅋㅋㅋㅋ 진짜 메시아였지. 첫번째 샀던 PS2는 형이 직접 그 칩을 장착하겠다고 하다가 그대로 전사. ㅋㅋㅋㅋ 그래서, 한대를 더 샀다. 나중에 렌즈 교체에 사용되었으니 큰 손해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후로 나는 나이 먹고서 엑스박스, 엑스박스 360, 게임큐브, 게임보이 미크로 등을 구매하며 비디오 게임에 대한 애정을 놓치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어렸을 적 즐기던 그때의 즐거움은 다시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슈퍼 마리오를 다시 즐기며 어렸을 적 순수했던 기분을 느끼려 노력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슈퍼마리오는 어렸을 때 해야 제맛이다. 나이 먹고서 하기엔 너무 단순하다. 그래도, 젤다의 전설은 최신판도 재밌더라만.
언젠가 한번 쭉 적어 보고 싶었는데 오늘에야 적는구나. 어렸을 때가 좋았다.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인생 어느 한 때의 즐거움에 대하여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의미있는 것이다.
위에 보이는 게임기 중에서 7번째 빼곤 모두 다 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