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겨울왕국(Frozen)이 꽤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난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도 ‘라이온 킹 보다는 못 하다’ 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내가 좀 더 어리던 시절에 봐서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로 라이온 킹이 뛰어난 걸까?
라이온킹은 참 여러가지를 다루었다.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왕이라는 존재의 중압감, 한끼 식사여야 할 멧돼지까지도 친구가 되는 우정, 사랑, 믿었던 삼촌 스카의 배신, 윤회사상까지도 거론 할 수 있는 ‘Circle of life’ 같은 걸출한 사운드트랙. 그럼에도 모든 게 조화로웠다. 엘사의 사랑으로 마법에서 풀린다는 반전 아닌 반전 같은 게 없어도 충분할만큼. 아, 적어도 이제는 왕자의 키스 따위에 모든 걸 의존하던 여성상은 사라졌다는 신선함을 느끼긴 했다.
흑맷돼지(품바)와 미어캣(티몬)
겨울왕국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CG가 아니던 시절의 움직임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기술이라면 훨씬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을텐데도 말이다. 골룸의 움직임은 구부정한 사람다운 움직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겨울왕국의 주인공들은 그 옛날 만화들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CG가 가는 방향이 손으로 그리던 시절에 가까워지고 있단 사실은 묘한 통쾌함을 준다. 스타크래프트 1을 엄청 좋아하지만, 2는 그래픽도 별로고 재미도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비슷한 맥락일거다.
CG나 게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사실 겨울왕국에서 보여준 CG가 얼마나 대단한 것일지 별로 의식 못 하는 것 같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비디오 게임 오타쿠의 공간 루리웹 같은 곳에선 눈은 고사하고 물 표현의 어려움이 곧잘 거론되고 했었다. 그런데, 눈이라니!! 하지만, 모든 게 CG인 영상에서 그러한 경외감은 들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겐 라이온킹의 버팔로 떼가 훨씬 인상적이었다. 돌이켜보면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e)’ 를 보며 느꼈던 경외감 정도가 라이온킹에 필적할만한 수준인 것 같다. 어쩌면, 이안 감독도 라이온킹을 아주 감동적으로 본 사람이 아닐까?
라이온킹을 재밌게 본 나는 라이온킹의 O.S.T. 를 사서 아주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트랙이 좋았던 것 같다. 별로였던 노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쿠나 마타타, 서클 오브 라이프, 캔 유 필 더 러브 투나잇, 비 프리페드(Be Prepared) 까지. 그에 비하면 겨울왕국 O.S.T. 는 Let it go 빼면 딱히 좋다고 할 노래가 없다. 그것도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장면과 어우러 졌기에 그런 것이지, 노래만 들었더라면 큰 감흥이 있었을까?
나이를 먹고 에버랜드 동물원에 갔다가 어떤 새를 보고 깜짝 놀랐다. 라이온킹에서 봤던 바로 그 새였던 것이다. 어떤 가게 간판에 그려진 주인장의 캐리커쳐를 본 뒤에 실제 그 가게의 주인장을 봤더니 엄청 닮았을 때 드는 기분과 비슷했다. ‘어쩜 이렇게 비슷하지?’ 보다는 ‘어쩜 이렇게 똑같지?’ 에 가깝다. 그 뿐만 아니라 라이온킹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그랬다.
뭐, 지금의 세대들에게 라이온킹을 보라고 하고 싶진 않다. 나보다 몇살 어린 친구가 재밌다고 하길레 봤던 Toy Story 에 별 감흥이 없던 나처럼, 그들에게도 라이온킹은 그저 그런 에니메이션 일수도 있겠지. 다만, 내가 적당한 나이에 라이온킹을 본 세대라는 사실이 은근히 기분 좋다.
2014.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