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익산 구룡마을 대나무숲에 다녀 왔습니다. 반딧불을 찍기 위해서죠.
대략 6시쯤 도착했는데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이 보입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슬슬 촬영 준비들을 하고 있더군요.
어떻게?여러 길목 길목에 삼각대를 설치하기 시작합니다. 삼각대 3~4개로 통로를 막아 놓은 거죠.
지나가려면? 옆으로 피해 가야죠. 물론, 길은 없습니다. 삼각대 알아서 피해서 다니는 겁니다. ㅋㅋㅋㅋ
모든 길목길목마다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한 사진작가인지 뭔지는 40-60대 정도로 보이는 중년 학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며 알려 줍니다. 뭐, 조리개 어쩌고 iso가 어쩌고.. 그러더니, 담배를 슥~ 물고 불을 붙이려던 찰나. 나와 눈이 마주치니 담배를 감춥니다. 나 지나가고 폈겠죠. 대마무 숲 안에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정말 한치 앞도 안 보입니다. 눈 뜨고도 안 보이는 기분 아십니까?
너무 어두워서 후레쉬를 켜면? 기다렸다는 '불 좀 꺼요!' 소리가 튀어 나옵니다. 말이 존댓말이지 반말보다 더 기분 나쁜 뉘앙스라면 아시겠습니까?
덕분에 여러번 대나무 뿌리에 걸려 자빠질 뻔 했습니다.
난 그들을 위해서 후레쉬를 안 켜고 다니는데, 그들은 제가 무슨 불빛이라도 내는 순간 바로 지랄을 합니다. ㅋㅋ
길을 헤매던 중 길을 쳐 막고 있는 한 무리에게 입구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오던 길로 되돌아 가시면 된답니다. 왜냐고요? 지들 사진에 내가 나올까봐요 ㅋㅋㅋㅋ 길이 원형 구조라서 뒤로 돌아가면 70%를 되돌아 가야 되는데 말이죠. 앞으로 가면 30%고요.
난, 순진하게도 ‘길은 제대로 가르켜 줬겠지’ 싶어서 가르쳐 준 방향으로 갔습니다.
되돌아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오던 길로 다시 가랍니다. ㅋㅋ 결국 다시 그길로 되돌아 가니 '결국 이길로 가시는구나? 허허..' 하면서 뒷통수에 한마디 해 주네요. 혈압이 올랐지만 참았습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사진들을 찍었을지 모르겠으나 기대도 안 되고 같잖은 사진들 많이들 남기셨으리라 추측합니다.
100m 거리를 30초씩 장노출 하고 있는지 뭐라도 건지셨겠죠. 아니 건지셔야지. 숲을 전세 내고(실제론 너나 나나 한푼도 안 냈지만) 그 지랄들을 하는데 뭐라도 찍어야지. ^^
그 암흑 속에서 잠깐 킨 액정 화면 정도도 포토샵으로 못 지울 정도면 뭔 사진생활이냐 하고 싶었는데, 그럴 충고 들을 나이들은 넘어 보여서 이렇게 글로 박제해 둡니다. 그런 마인드로는 평생 찍어도 남들 흉내나 내다 끝나는 거에요. ^^
새를 찍으려고 나무에다 새 다리를 본드로 고정 시켰다는 괴담은 들어 봤지만, 이 날의 경험은 상상을 초월하는 엿같은 기분이었어요.
어쨌든, 시간 되시면 반딧불은 보러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아름답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