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생물분류 현장전문가 역량강화 교육(호남·제주권)' 강의를 다녀왔다.
기관명은 ㄱㄹㅎㄴㄱㅅㅁㅈㅇㄱ. 일단은 거리가 정말, 정말 멀었다. 강의 시작은 아침 10시인데 네비게이션으로 찍어 보니 3시간이 걸린다고 하기에, 도저히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출발할 자신은 없어서 전날 가기로 마음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최종 목적지는 대전에서 갔으면 4시간 거리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났어야 하는 거리.)
전날 낮 2시쯤 출발했으니 여유있게 설렁설렁 가고 있었는데, 도착할 때쯤 되니 전화가 한 통 왔다. 내일 강의를 해야 할 곳은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그곳에서도 1시간 반 정도를 더 가야 하는데, 강의 마치고 다시 돌아갔다가 가느니 아침에 그쪽으로 내 차로 혼자 오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원래 계획은 목포에서 아침에 같이 버스를 타고 출발하는 것이었는데, 강의를 마치고 내가 집에 빠르게 가려면 강의 장소에 차를 가져오는 게 나으니까.
참 희한하게도 ‘완도-대전’ 이나, ‘완도-목포-대전’이나 소요시간이 비슷해서 고민을 하다가 그냥 아침 일찍 완도로 가기로 정했다. 아침에 대충 빵을 먹고 출발하니 10시가 조금 안 되어 도착할 수 있었다.
강의장에 가보니 오랫만에 보는 윈도우7이 설치된 컴퓨터가 있었고, 인터넷은 되지 않았다. 벌써 몇년 째 다양한 강의를 다녀 봤지만, 늘 강의장에는 여러 변수가 있게 마련이다. 그 중 가장 흔한 것이 인터넷이 안 되는 것인데, 그럴 땐 당황하지 않고 내 휴대폰으로 테더링을 연결하면 된다. 조금 느리긴 해도 그럭저럭 인터넷이 되긴 하니 그게 최선이다.
강의를 시작하니 졸고 있는 수강생이 여럿 보였다. 내 강의가 재미없어서겠지. 어쩔 수 없다. 어느 강의를 가도 졸고 있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엎어져서 자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것도 너무 피곤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쏟아지는 졸음 앞에서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열심히 떠들다 보니 수강생들이 졸린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위를 보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가 위로 올라 가 흰자위가 더 많이 보이는 상태 말이다. 그런 눈은 가족의 것 이외엔 볼 일이 없는 눈이다. 떠올려 보시라. 졸려서 눈동자가 하얗게 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자꾸 그런 눈으로 날 보기에 '졸리면 그냥 절 보지 마세요. 무섭습니다. ㅎㅎ' 하고 농담을 해 봤지만 반응은 없었다.
스마트폰에 관련된 강의다 보니 '아이폰을 쓰는 분이 있으세요?' 하고 물어봤는데 20여명 중에서 아이폰은 나 뿐이었다. 물론, 그럴 수야 있다. 아이폰이 많은 경우는 대학생을 상대로 한 수업 뿐이다. 아무튼, 그렇게 물어 보니 수강생 한 분이 '우린 숨길 게 별로 없어서요.' 라고 대답하신다. 법무부장관의 아이폰 이야기를 하시려는 것 같긴 한데, '아이폰을 쓰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이상하다' 싶어서 그냥 웃어 넘겼다.
세 시간여의 강의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는데 분위기가 어째 싸하다. 수강생 중 몇명이 불만들이 많은가 보다. 담당자들이 나름 생각해서 짜놓은 동선이 어떻네, 장비를 왜 안 주네, 어디다 포집을 할 것이며, 동정은 어떻게 할 것이며.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 놓는다. 나야 그저 하루 일당 받는 강사인데 그들의 불만을 해결 해주긴 힘들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며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곤 생각한다.
담당자들의 고충도 잘 이해가 간다. 담당자들은 행사건 전시건 교육이건 열심히 준비하고, 나름의 목적을 정하기도 하지만 그거야 달성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사실 안 될 때가 더 많지 않나? 어차피,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막무가내로 할 수는 없다. 서로 줄 수 있는 것과 받을 수 있는 것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그 안에서 서로가 협동할 때 최고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편으론 기획의 미흡함이나 헛점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어느 한편으론 도대체 어떤 교육과 프로그램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생각한다. 결국, 대체로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 가는가와 그 분위기를 누가 주도하느냐가 늘 관건이다. 몇 명이 나서서 불만을 제기하면, 몇몇은 거기에 호응하고, 몇몇은 그걸 나무라고, 대체로는 뿔뿔이 흩어진다. 이런 경우를 하도 많이 봐서 이젠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다.
여차저차 하다 보니 강의는 시간보다 이르게 끝났다. 야외 실습 수업이었는데, 어차피 배울 것도 없고 가르칠 것도 없으니 일찌감치 끝내는 게 서로에게 다행이었을 것이다. (물론 난 가르칠게 있었지만 ㅎㅎ)
사실, 일당을 받으려고 강의에 가지만 그 시간을 그저 떼우려는 생각같은 건 해 본적이 없다. 최선을 다하고, 불만족스러운 사람이 없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안 될 때도 있다. 그럴 땐 꽤 씁쓸한데 때론 그런 기분이 오래 가기도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 어제는 그런 기분이 굉장히 빨리 사라졌다. 교육이 잘 안 됐지만, 내 일은 끝났다는 생각에 많이 홀가분했다. 난 최선을 다 했고, 누군가가 만족을 하건 말건 내 일은 끝났기 때문이다. 집에 가려면 4시간 운전을 해야 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어제의 강의는 내 나름대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나름 며칠간 빡새게 만든 강의자료는 누구 하나 본 사람이 없다. 아래에 보듯이 2번의 클릭은 나만 누른 것이다. ㅋㅋㅋ 교육 전날 새벽까지 열심히 만든 것인데 허탈할 따름이다. 뭐, 어쩌겠나? 강의 현장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저 서로 상대를 잘못 만났을 뿐이다.
수강생들에게 먼저 가 보겠다는 인사를 하며 '강의 자료 꼭 보시고 궁금하신 부분은 저한테 연락 주시면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다.' 고 말하고 있는데, 수강생 중 한 명이 '나한테 물어봐. 난 공짜로 알려 줄 수 있으니까!' 이러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나도 돈을 받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의 외침을 들으니 난 정말로 조금의 미련도 남지 않았다. 그저 든든할 따름이다. 뒷일을 부탁 드립니다.
숱한 강의를 다녔지만, 이번 강의는 나름 독특한 기억이다 싶어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