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
Innovation
닌텐도는 첫번째 가정용 콘솔인 Famicom을 내놓으면서 라이트건과 Game & Watches를 졸업했다. 패미컴의 디자인은 클래식이 되었고, 닌텐도가의 향후 20여년 이상을 지탱하게 해 주었다.
Software
동키콩이란 게임은 마리오를 아케이드에서 가정으로 그만의 오리지널 모험에 불러 들였다.
그리고, 닌텐도는 Mario Bros에 그를 출연시켰고 그 게임은 닌텐도의 주춧돌이 되었다.
Commercial
패미컴은 두달만에 50만대 정도를 팔렸고, 큰 성장을 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그렇게 뛰어난 성능은 아니었지만, NES의 성공은 일본의 홈게임 시장을 만드는 데 크게 공헌했다.
1984
Innovation
닌텐도는 라이트건과 유사한 Zapper, 패미컴 로봇(미국에선 R.O.B로 불림)을 선보임으로써 게임기라기 보단 가정용 컴퓨터라는 인상을 더욱 주게 되었다.
Software
NES의 초반에는 주로 아케이드 게임을 이식한 듯하며 심플한 게임이 주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게임들은 주로 골프, F1 레이스, 핀볼, 테니스(위에 있는 사진) 같은 경우처럼 게임의 제목 자체가 게임의 장르까지도 설명을 하는 게임들이었다.
Commercial
일본에서의 패미콤의 판매량 증가는 특정 게임에서 게임기가 멈추는 현상이 보고되기 시작하면서 타격을 받았다. 원인이 하드웨어적인 문제라는 것이 밝혀지게 됨에 따라, 야마우치 회장은 어렵지만 멀리 앞을 내다보고 이 문제에 대처했다. 전량 리콜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1985
Innovation
일본에서 패미콤이 안정화 되어 가고, 아케이드의 동키콩 게임이 수익이 많이 발생하자, 닌텐도는 패미콤의 디자인을 변형해서 새로운 시장에 도전을 한다. 이름은 NES였다.
Software
마리오는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지만, 슈퍼마리오는 이제 힘이 다해 가고 있었다. 닌텐도는 이에 NES라는 새로운 기종을 출시하며 거기에 슈퍼마리오를 번들 게임으로 포함시켰다. 덕분에 슈퍼마리오는 역대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게임이 되었다. 4,000 만장 이상이 팔린 것이다.
Commercial
미국에선 자신들이 샀던 게임기가 쫄딱 망한 기억 때문에 NES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이 많았다. 하지만, 일본에선 패미콤의 열기가 식을 줄 몰랐고, 출시후 2년간 650만대의 게임기가 팔렸다.
1986
Innovation
닌텐도는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을 선보이며 처음으로 큰 도약을 위한 모험을 감행했다. 이것은 카트리지 보다 저렴하고, 다시 쓸 수 있었으며, 또한 퍼블리셔들이 저항하기 전까지는 디스크를 키오스크에 넣으면 가격이 인하된 게임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다.
Software
4년동안 패미컴은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이때 등장한 몇개의 시리즈물은 닌텐도에게 힘을 더욱 실어 주었다. 메트로이드나 젤다의 전설(위의 사진) 같은 게임들은 디스크 시스템 덕택에 세이브가 가능해 졌다.
Commercial
미국에서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NES는 일본에서 패미콤이 성공한 것과 같은 길을 밟기 시작했다. 1986년 말무렵 NES의 판매량은 100만대를 넘겼고 미국의 게임을 휩쓸었다.
1987
Innovation
배터리가 들어간 카트리지의 출현으로 디스크 시스템의 인기가 시들해졌고, 미련하게도 닌텐도 아메리카는 핸즈프리 컨트롤러를 발표했다. 이 제품은 NES 게임중 대부분에 사용이 불가능했다.
Software
닌텐도는 사이드 스크롤 방식의 젤다를 발표해서 새로운 팬들의 원성을 샀다. 하지만,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Punch Out!!' 에 열광했다. 이 게임의 미국판에는 마이크 타이슨이 등장을 하기도 했다.
Commercial
미국의 NES 판매량은 계속 증가해서 400만대에 이르게 된다. 이 숫자는 일본의 판매량과 합쳐져 닌텐도의 마켓 쉐어가 70퍼센트에 이르게 된다. 그 당시 마스터 시스템(Master System)을 출시한 세가의 힘은 미약했다.
1988
Innovation
코나미가 한참 후에 오락실을 뜨겁게 달구었단 사실이 무색하게도, 닌텐도는 이때 'Power Mat' 라는 춤을 위한 매트를 발매했다. 휘트니스 게임을 생각하고 만들어 졌지만 성공하진 못 했다.
Software
오리지널 슈퍼마리오는 판매량에서 큰 기록을 세웠지만 번들 게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지만 들었지만, 슈퍼마리오 브라더스3는 다시 이 프렌차이즈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또, 이 해에는 패미콤용 (어드밴스) 워즈 시리즈가 탄생했다.
Commercial
굵직굵직한 게임들은 NES가 미국에서도 화려한 행진을 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맘때쯤 700만대를 넘긴 판매량은 출시된지 5년이 지났음에도 시들줄을 몰랐으며, 1995년 까지도 멈추질 않았다.
1989
Innovation
군페이 요코이는 'Ultra Hand', 'Beam Gun' 이라는 제품들로 닌텐도가 장난감 사업,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거듭나게 했다. 그 후에는 Game Boy라는 제품을 통해 닌텐도가 휴대용 게임기로 뛰어들게 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Game Boy는 이후 긴 시간동안 포터블 게임기 시장을 지배 할 수 있었다.
Software
닌텐도가 테트리스의 권리를 획득한 것은 게임계에 매우 유명한 이야기중 하나이다. 이 게임은 3,000만개 이상의 판매를 거두었으며, 때론 게임기에 번들로 포함될 때도 있었다. 닌텐도의 투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Commercial
미국에서의 NES의 판매는 가속화 되어 천만대에 가까워 졌으며, 일본은 게임보이의 발매에 즉각 반응해서 1년간 100만대 정도가 팔렸다. 그 와중에 닌텐도는 80%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게 됐다.
1990
Innovation
8bit 전쟁이 끝나감에 따라 닌텐도의 경쟁상대들은 차세대기로 전향을 했고 닌텐도도 슈퍼 패미콤(이하 SFC)을 출시했다. SFC의 경쟁상대는 Sega의 메가드라이브(Mega Drive)와 PC 엔진(PC Engine)/Turbo Grafx-16 이었다.
Software
SFC는 높은 수준의 런치 타이틀이 필요했다. 수많은 NES를 구매했던 사람들이 왜 새로운 게임기로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는지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게임이 슈퍼 마리오 월드이다. 이 게임은 2천만장 이상이 팔리게 된다.
Commercial
NES가 아직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고, 테트리스 열풍은 게임보이의 판매량에 도움을 줬다. SFC는 너무 유명해져서 야쿠자들이 물량을 가로채기 할 것이란 말도 나왔다. 닌텐도는 90%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갖게 됐다.
1991
Innovation
향후 몇년간 닌텐도가 소니와 손잡고 SFC를 위한 CD-Rom 드라이브를 개발한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닌텐도는 깜짝 발표를 통해 소니가 아닌 필립스와 손을 잡겠단 발표를 했다. 후에도 몇년간 이러한 말들이 떠돌았다.
Software
SNES는 닌텐도 최강의 라인업이 선보이던 때였으며, 왕관은 일찌감치 닌텐도가 차지했다. 슈퍼마리오가 나온지 정확히 1년뒤에 선보인 젤다의 전설~신들의 트라이포스(위의 사진)는 젤다를 시스템 셀러(킬러 타이틀)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가 된다.
Commercial
SNES는 일본의 발매 때 커다란 성공의 기쁨을 누렸지만, 8백만대가 넘게 팔리고 있던 게임보이, 세가의 강력한 견제는 닌텐도의 시장 점유율을 70% 까지 낮췄다. 이것은 상당한 감소였다.
1992
Innovation
여전히 SNES를 위한 CD-ROM을 채택하는 문제는 논쟁을 불러오고 있었는데, 닌텐도는 갑작스럽게 소니와의 협력은 CD-Rom과 카트리지가 모두 사용가능한 게임기를 만드는 것이라는 발표를 했다.
Software
닌텐도의 마술은 그칠 줄을 몰랐다. '과거로 간 링크'(신들의 트라이포스의 북미판 제목)는 미국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고, 마리오 페인트는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으며, 슈퍼 마리오 카트의 첫 작품이 선보였다.
Commercial
닌텐도는 몇년이나 고정된 가격으로 판매를 했고, 아타리와 Tengen과의 법적 공방에서 손실을 입지 않았다. 하지만, -SNES의 판매량이 거의 1800만대에 달하고 있었음에도- 감소 추세는 계속됐고, 닌텐도의 마켓 쉐어는 52% 까지 떨어졌다.
1993
Innovation
닌텐도는 CD-ROM 프로젝트 때문에 혼란스러워 했다. 영국에 있던 Argonaut 팀은 Super FX chip을 만들어서 SNES의 그래픽 처리 능력을 증가시킨다.
Software
Super FX 칩은 Star Fox에서 첫선을 보였고, 닌텐도의 프렌차이즈에 추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칩의 출시는 한편으로 닌텐도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목표가 분산되는 면도 있었다. 이 칩은 Super Punch Out 같은 몇몇 게임에서만 사용되었다.
Commercial
닌텐도의 슈퍼마리오의 영화 제작등으로 문화적인 측면에선 영예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SNES는 메가 드라이브와 힘든 경쟁을 하고 있었으며 간신히 절반 정도의 마켓 쉐어를 확보 할 수 있었다.
1994
Innovation
CD를 사용하는 콘솔을 포기하고, 닌텐도는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게임기의 발표를 알린다. 'Project Reality' 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훗날 N64로 등장한다. 같이 발표된 제품은 형편없는 3D 시스템인 'Virtual Boy' 였다.
Software
영국은 닌텐도의 평판을 다시 한번 높였다. 레어(Rare)사가 동키콩 컨트리를 출시한 것이다. 하지만, 닌텐도 팀은 더욱 굉장한 '슈퍼 메트로이드' 를 출시하여 분위기를 주도했다.
Commercial
16 비트 콘솔 게임기의 경쟁은 안정화되기 시작했고, 닌텐도는 다시 57% 쉐어를 확보했다. 게임보이의 판매는 꾸준했고, 발매후 5년동안 거의 4,000만대에 육박하고 있었다.
1995
Innovation
닌텐도는 SFC가 일본내에서 큰 성공을 거둔데 힘입어, 'Satellaview' 라는 위성 모뎀 에드온 장치를 발표한다. 그것은 게이머가 게임을 다운로드 받거나, 퀴즈나 뉴스 등을 받는 것이었다. 이 방송은 2000년까지 지속됐다.
Software
닌텐도는 '요시 아일랜드' 를 출시한다. 기본적으로 슈퍼 마리오 월드의 파생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게임은 일러스트같은 화면을 보여주는 게임이었는데 판매량은 400만장에 그쳤다.
Commercial
닌텐도의 사업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버츄얼 보이는 일본과 미국 모두에서 실패했고, 게임보이의 판매량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중성은 아직도 높았지만 말이다.
1996
Innovation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각종 기록을 깨며,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닌텐도는 이에 보다 나은 성능의 N64를 출시했다. 이 게임기의 아날로그 스틱과 3D 능력은 게임 디자인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었다.
Software
N64는 슈퍼마리오 64 같은 걸작으로 게이머들이 3D에 대해 기대하는 모습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하지만, 그해 출시된 또 다른 걸작 포멧몬 Red/Green 을 넘어서진 못 했다.
Commercial
N64는 초기에는 SNES의 성공을 다시 한번 잇는듯 보였다. 일본과 미국에서 발매 첫주에만 50만대 가까이가 팔린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모든 콘솔 판매 기록을 갱신했다. 포켓몬은 게임보이에 다시 한번 재기의 힘을 불어 넣었다.
1997
Innovation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 다시 형성되기 시작하자, 닌텐도는 게임보이에 보다 더 주의를 기울였다. 게임보이의 다양한 모델 체인지의 첫번째인 게임보이 포켓도 이때 선보였다. 이 게임기의 특징은 더 나은 화면이었다.
Software
닌텐도의 97년 대작은 스타폭스 64(별칭 Lylat Wars) 였다. 이 게임은 현기증이 날 것 같은 3D 환경과 열악한 음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때 등장한 레어의 골든아이는 이 게임에 대해 모든 걸 잊게 만들었다.
Commercial
강력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N64의 판매량은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닌텐도는 일본, 미국에서 가격 인하를 하게 된다. 하지만, 게임보이는 새로운 모델과 포켓몬 덕택에 여전히 강한 기세로 팔리고 있었다.
1998
Innovation
여전히 닌텐도는 휴대기에 촛점을 맞췄고 '게임보이 컬러'를 발매한다. 이것은 기존의 오리지널 제품을 거의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 시킨 제품이었다. 특히나, 앞을 내다본 게임보이 카메라나 프린터가 그러했다.
Software
이때 나온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는 다른 모든 게임들을 버로우 시켜 버렸다. 훌륭한 게임 플레이와 진동을 잘 사용한 플레이, 새로운 컨트롤은 그만한 찬사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Commercial
N64의 고전에도 불구하고 게임보이 포켓과 게임보이 컬러가 출시됐는데, 닌텐도의 이익은 치솟아서 $6억에 이르게 된다. 여기엔 미국 시장에서 포켓몬이 출시된 것도 적지 않은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1999
Innovation
닌텐도는 그전부터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이나 SNES의 Satellaview 처럼 N64에 64DD 디스크 드라이브 에드온을 추가시키기 위한 계획을 갖고 있었고, 4년간의 연기 끝에 1999년에 발매를 한다. 하지만, 성공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Software
닌텐도는 게이머들의 게임 회사로 거듭나려는 취지에 발맞춰, '슈퍼 스매쉬 브라더스' 를 발매했다. 이 게임은 추억의 프렌차이즈들을 합친 게임으로 다인용의 재미와 특히 파고들 요소가 많아 미국의 게이머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Commercial
N64의 판매 감소 추세가 이어졌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대세가 되어 감에 따라 닌텐도의 마켓 쉐어는 25% 정도에 그치게 됐다. 하지만, 포켓몬은 여전히 6억 4500만 달러 정도의 이익을 주고 있었다.
2000
Innovation
닌텐도는 결국 카트리지의 한계를 받아 들이고(한편으론 N64가 출시된지 4년이 지난 시점이었기도 했다.), 디스크에 기반한 코드네임 돌핀, 즉 게임큐브를 발표한다.
Software
N64는 마조라의 가면(위의 사진)으로 황혼기에 접어들게 됐다. 이것은 같은 기종에서 젤다가 두번 나온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 게임의 다소 음울한 분위기와 독특한 게임플레이 혁신은 다양한 반응을 불렀다.
Commercial
포켓마니아가 줄기 시작하고 N64가 막을 내릴 무렵이 되자 닌텐도의 이익은 4억 달러까지 줄어들게 된다. 닌텐도 아메리카의 회장, Howard Lincoln 을 비롯한 닌텐도의 성공을 일구었던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은퇴를 하고, 한 시대는 막을 내리는 듯 했다.
2001
Innovation
상황은 계속 안 좋아지고 있었고 닌텐도의 영향력은 낮아져 가면서 새롭게 사장이 된 사토루 이와타의 미래도 어두워 보였다. 닌텐도는 게임큐브와 차세대 게임보이인 게임보이 어드밴스를 선보인다.
Software
루이지 맨션이 주목을 받긴 했지만 게임큐브의 런치 라인업은 힘이 부족했다. 하지만, N64에 있었던 Animal Forest(동물의 숲)의 새로운 작품이 힘을 실어줬다.
Commercial
게임큐브의 일본내 성적은 N64 보다도 못해서 걱정을 자아냈다. 미국에서의 결과도 그리 만족스럽지 못 했다. 그러나, GBA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첫주에만 60만대 이상이 팔렸고 이익은 $726(백만) 에 이르게 됐다.
2002
Innovation
GBA와 GC의 동시 출시는 닌텐도의 기술적인 판매가 힘이 빠진 듯 보였다. 게임큐브용 GBA 플레이어, 네트워크 아답터가 등이 그런 것이다.
Software
GC가 마리오 게임없이 출시한 것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닌텐도는 이에 슈퍼 마리오 선샤인을 출시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까다로운 카메라 컨트롤과 반복되는 임무에 대한 불만으로 차가운 반응을 얻게 된다.
Commercial
게임큐브의 판매는 여전히 부진했고, PS2의 인기에 거의 완전히 묻혀 버렸다. 닌텐도는 미국에서 25%의 가격인하를 실시했지만, 한편으론 EU에 속한 국가들에선 가격 인하가 없이도 $147(백만) 의 수익을 내서 수익은 여전히 높았다.
2003
Innovation
닌텐도는 전세계적으로 GBA의 밝지 못한 스크린이 비판을 받자 GBA SP를 발표했다. SP는 폴더 형식이며 충전식 배터리와 더 밝은 화면을 갖고 있었다.
Software
닌텐도의 미래 방향을 보여줄 힌트라고 할 수 있는 '와리오 웨어(Wario Ware)' 가 이때 선을 보였다. 하지만, GC의 메인 타이틀이라 할 수 있는 '카비 에어라이드(Kirby’s Air Ride)'는 부진했고, 마리오 카트: 더블 대쉬(Mario Kart: Double Dash) 도 다소 실망스러웠다.
Commercial
게임큐브의 가격을 $99 까지 내렸지만 GC는 부진을 면치 못 했다. PS2가 70%의 마켓쉐어를 차지하는 데 비해 16% 정도의 마켓 쉐어 밖에 가지질 못 했다. 닌텐도는 재고 제품의 정리를 위해서 제품의 생산을 몇개월간 멈추었다.
2004
Innovation
지난 몇년간의 고통스러운 실적에도 불구하고 닌텐도는 큰 모험을 감행한다. 바로 DS였다. 그것은 조잡해 보였으며, 두개의 화면과 터치 입력을 불안한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려는 성공으로 바뀌게 된다.
Software
닌텐도는 총력을 다해서 DS의 독특한 장점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밴드 브라더스같은 게임들의 성공도 단순한 이식작인 슈퍼마리오 64 같은 게임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 했다.
Commercial
이익은 닌텐도의 최근 기록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316, 백만) 하지만, 분명히 살아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으며 SP의 판매 호조는 계속됐다. 그리고, 북미에서 발매된 DS는 발매 몇주만에 100만대를 넘겨서 비평가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2005
Innovation
DS가 크게 성공을 하는 한편, 닌텐도는 레볼루션을 발표했다. 이 제품은 다음번 가정용 콘솔이었다. 기술적인 기밀사항들이 쉽게 복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닌텐도는 자세한 사항은 어떠한 세부사항도 밝히지 않았다.
Software
DS는 발빠른 행보를 성큼성큼 내딛었다. 닌텐독스나 뇌단련(위의 사진)은 게임계의 상식을 뒤엎었고, 좋은 소프트웨어 하나가 몇주간 차트에 머무르는 큰 규모의 게임들보다 생명력이 길 수 있음을 증명했다.
Commercial
DS의 성공에 힘이 부어 이익이 급상승했다. ($777 백만) 닌텐도는 20여년간 이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사업계에서 총판매개수를 20억개가 넘는 게임을 팔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2006
Innovation
E3에서 Wii가 데뷰를 했다. 그리고, 민감하며 직관적인 컨트롤러로 의심의 눈초리를 잠재웠다. 2006년 말에 버츄얼 콘솔 사업을 알렸으며 Wii 채널은 그들의 소프트웨어 혁신의 우수성을 증명했다.
Software
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보다 상징적인 타이틀은 없을 것이다. 닌텐도의 하드코어, 캐쥬얼 게이머 모두에게 어필한 이 게임은 마리오 시리즈의 힘이 아직도 건재함을 증명했으며, 슈퍼 마리오 선샤인의 두배를 팔았다.
Commercial
이익은 계속 상승했다. DS의 새로운 버전인 Lite는 연일 매진 행진을 계속했으며, Wii는 전세계에서 들여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