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P. Annie Lomax, My Mom 1938-2012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 테리 리차드슨(Terry Richardson)의 모친이 별세했다. 그 사실은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terryworldfb)에서 알게 되었다. 그의 블로그에는 자신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가 찍은 마지막 어머니 사진이다. 웬 패션사진 작가가 쌩뚱맞게 어머니의 사진을 공개했을까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그는 이미 몇년 전부터 자신의 어머니 사진을 꾸준히 블로그에 공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그녀의 마지막 사진도 올린 것 뿐이다.
http://www.terrysdiary.com/post/31339303208/the-last-picture-i-took-of-my-mom
참 슬픈 사진이다.
고인이 되기 직전이나, 고인이 된 후의 사람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지 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죽어가는 자신의 어머니 사진을 찍은 것에 대해서 혹자는 '아니, 어머니가 죽어가시는데 한가롭게 사진이나 찍고 앉았냐?' 라고 떠들 수도 있을 듯 싶다. 다른 나라에선 몰라도 우리나라에선 고인에 대해선 뭔가 엄숙하고 무거워야 한다는 불문율 비슷한 게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단적인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의 빈소를 찾았을 때 웃는 낯짝으로 찾아가는 것은 매우 무례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 그렇다. 하긴, 그 새끼 언제 뒈지나 싶던 김정일이 죽었을 때 조차 우리들은 대놓고 웃지 않았다. 그게 다 죽음에 대한 엄숙주의가 내놓는 결과물이고, 우리 사회는 떠나는 부모를 어떻게든 기억하고 싶어서 찍는 사진을 '굉장히 싸가지 없는 자식새끼' 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안 될건 또 뭐냐. 막말로 남들이 싸가지 없는 새끼라고 해도 사진을 찍어서 기억하고 싶은 행위가 또 법적으로 문제될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의사도 아닌 아들이 할 수 있는 건 또 뭐가 있는가? 테리의 블로그를 보면 어머니 임종 직전의 사진이 여러장 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선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무슨 다큐멘터리 기록하듯 차분하게 찍은 그를 보고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마음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포토그래퍼 중 한명인 테리는 사진으로 어머니를 기리고 페이스북에 그 사진을 공유했다. 화가라면 슬픔을 그림으로 표현할 것이고, 음악가라면 음악으로 슬픔을 표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가라면 어찌하는 게 맞겠는가.
그러고보니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 사진관에서 일할 때 어떤 남자가 여러번 찾아 온 일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기 직전에 찍은 사진을 아주 여러번 다양한 크기로 인화해 갔다. 마치, 테리의 어머니 사진처럼 산소호흡기를 장착하고 찍은 사진이었는데 살아있는 것인지 이미 죽은 것인지 잘 분간 할 수도 없는 그런 사진이었다. 그 남자가 똑같은 사진을 너무 여러번 뽑아가니 이상하다는 생각도 좀 들었지만, 그렇게라도 어머니를 기억하고 싶은 그의 마음은 누구도 비난 할 수 없을 것이다.
작년 봄쯤에 나는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나마 건강 할 때 함께 찍은 사진은 이제 그 친구의 마지막 사진이 되었고, 그 친구가 죽어가던 때의 모습은 잘 떠오르질 않게 되었다. 물론, 기왕이면 좀 더 건강하던 때의 모습만 기억하는 게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임종 직전에 내가 느꼈던 큰 슬픔과 죽음을 맞이하는 친구의 모습은 그 당시에도 잊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이제 겨우 1년쯤 지났다고 그때의 슬픔과 고통을 잊어가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웬지 모를 씁쓸함을 남기게 한다. 그때 나는 친구의 사진을 찍어둬야 했던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