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즐거운 일요일~ 그러나,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 나는 초조해졌다.
‘이 황금같은 휴일도 인터넷과 TV와 함께 해야 하는가!! 하악!’
안 되겠다 싶어서 산에 다녀 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은 것은 어느 산으로 갈지가 문제였다. 바로 집 뒤에 있는 계족산에 가느냐, 아니면 상당히 먼 계룡산이냐. 망설이다보니 한 시간 정도가 지나버렸다.
어제 일하는 곳에서 얻어온 필름 한통을 카메라에 넣고 샤워를 하고 결국엔 계룡산을 가기로 결정했다. 동네 뒷산도 아니고 102번 버스를 타고 거의 종점에 가까운 지점(우리집)에서 종점(진짜 종점) 까지 가야 하는 먼 길이다. 얼추 시간을 시간을 재보니 1시간 이상이 걸리는 멀고도 먼 길이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길에 동네 테니스장 근처에 있는 인적없는 벤치나, 호떡으로 끼니를 때우는 호떡 장사 아저씨를 보며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카메라를 꺼내고 싶은 의지가 강하질 않았나 보다. 하지만, 호떡 장사 아저씨가 호떡을 드시는 모습을 보며 몇가지 생각을 했다. 첫번째는 ‘저 아저씨는 호떡을 너무 좋아해서 호떡 장사를 하는게 아닐까?’ 라는 약간의 동경심이었고(마치, 그 옛날 오락실 주인 아저씨처럼). 다른 하나는 ‘저 모습은 마치 붕어빵 장사를 하는 사람이 붕어빵을 먹고 있는 것 같구나.’ 같은 생각이었는데, 자신의 수확물을 스스로 먹고 있는 모습은 약간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스스로 쌀을 수확해서 밥을 먹는 농부들의 신성한 노동에 대한 경탄과도 비슷한 감정이랄까?
또 하나 재미있는 광경을 봤는데 어떤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음식 그릇을 수거하는 용도로 쓰일 법한 커다란 노란 바구니에 아이들 두 명을 태우고 가는 모습이었다. 강아지를 태우고 가는 건 봤는데 사람을 그것도 두 명이나 태우고 가는 모습은 참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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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나는 버스를 타고 계룡산으로 출발을 했다. 가는 데 한 시간 이상이 걸렸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길을 조금 가다 보니 스포티지의 신형이 출시 된다며 차들을 전시해 놓고 늘씬한 모델 네 명이 차에 올라타 있는 게 보였다. (말 그대로 올라타 있었다. 차의 지붕에 올라가 있었으니까.)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 가는 길이어서 그런지 그런 용기가 나질 않았다. 알려지지 않은 행사라서 그런지 사진을 찍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모델들은 여태까지 본 그런 모델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듯 했다.
나는 아쉬움을 달래며 산으로 향했다. 바야흐로 단풍놀이 시즌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조금 아깝지만 나는 큰맘을 먹고 계룡산 국립공원의 입장 요금 2,000 원을 쓰기로 결심했다. 산을 오르는 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가족들, 바람이나 한번 쐬러 와 본 듯한 연인들, 산 입구에 있는 식당에 가득찬 사람들, 밝은 표정으로 예쁘게 치장하고 걷는 젊은 여자들의 무리, 등산을 하러 온 것 같아 보이진 않는 하이힐을 신은 여성, 일을 하느라 피곤하지만 부인의 성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온 듯 보이는 아저씨, 아들과 함께 사이 좋게 걸어 가시는 아저씨, 모든 것이 신기한 듯 들떠 있는 아이들.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혼자서 산행을 하고 있는 젊은 남자를 보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청년 실업 60만? 실연? 나중에는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사진이 취미인 학생? 사진 작가? 물론, 그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혼자 다니는 게 조금 의식 되기는 했지만, 나나 그 사람들이나 기억 속에서 길어 봐야 5분 정도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산을 올라 가다 보니 동학사가 나왔고 조금만 더 가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예전에 한번 남매탑 이라는 곳에 올랐다가 미치도록 힘이 들었던 기억이 문득 났고, 혼자서 다니는 데다가 얼굴까지 시뻘개지고 비지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그래서, 나는 발길을 돌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을 올라가는 길엔 꺼내 보지도 못 한 카메라를 그제서야 꺼내 사진을 몇 컷 찍기도 했다.
산을 내려가 버스 정류장에 가보니 웬 인도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 무리가 보였다. 뭐라고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외국 사람들이 떠드는 것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별 다른 내용은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문득 예전에 ‘반지의 제왕’ 을 보러 혼자 극장에 갔다가 중국 사람들 한 무리가 내 옆에서 영화를 보며 떠들던 일이 생각났다.
혼자서 한 단풍놀이는 의외로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