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와 접전을 벌였다지? 그래서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서 봤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인도의 빈민촌에 살던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평생동안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가 청년이 되었고, 현재는 콜센터에서 차심부름을 하는 직원이다. 그러던 그가 한 퀴즈쇼에 출전을 하게 되었고 그는 마지막 문제까지 맞춰낸다. 도대체, 그렇게 밑바닥 인생을 살던 사람이 어떻게 그 모든 문제를 다 맞출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감독의 설명은 영화의 마지막에 나온다.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제법 있지만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우선, ‘인생의 의외성’.
항상 인생이라는 게 자신이 의도한 방향대로 흘러 가는 것은 아니며,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를테면 ‘신의 뜻’ 이라고 할 법한 일들. 예를 들어서, 도무지 만날 것 같지 않은 장소에서 평소 맘에 담아두던 사람을 보게 되는 일들이 그런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의외성이라는 게 항상 그렇듯이 너무 자주 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일상이 되어 버린다. 어쩌다가 마주친 예쁜 여학생은 하루 종일, 길게는 기약을 알 수 없는 다음번 재회까지 내 머리와 맘속을 떠돌아 다니지만 하루에 대여섯번씩 보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져 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의외가 아닌 운명의 레벨까지 도달했다. 물론, ‘이것이 운명일까’ 라는 느낌도 나쁘진 않지만, 약간은 과도하게 우연의 연속을 집어 넣은 것 같다. 중간에 그는 대답한다. ‘문제가 그게 아니었다면 난 맞출 수 없었겠죠.’. 우연성의 끝을 보여주는 문답이라 할 만 하겠다.
이에 대한 감독의 설명도 영화의 마지막에 나온다.
또, 한가지. ‘신나게 떠들었지만 도대체 뭘 떠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대화.’
나는 살아 오면서 많진 않지만 기억나는 대화들이 있다. 대개 대화 전체는 기억이 나질 않고, 짤막한 문답, 행동, 느낌들만이 기억나는 편이지만.. 아무튼, 그런 대화들의 특징은 말 그대로 뭘 떠들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주장이 불분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주 좋은 반대 사례다. 어차피, 믿건 안 믿건 자신의 자유인데 그것에 대해서 논쟁을 할 필요도 없고 설득을 시킬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영화로 치자면 별다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 내용이 좋다. 혼자 신이나서 조잘조잘 떠드는 여자는 좋지만, 가만히 듣고 있는 나에게 ‘넌 나를 사랑스러운 여자로 생각해라!’ 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어차피, 판단은 내가 하는 거니까. 그런면에서 이 영화는 너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감이 없잖아 있다. 가난하지만 재주있는 청년의 성공담이라는 소재는 맘에 들지만, 너무 해피엔딩이라 조금은 몰입감이 약한 것 같다.
이에 대한 감독의 설명 또한 영화의 마지막에 나온다.
사실 이 영화의 가장 쿨한 점은 바로 그 감독의 설명이다. 우리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들은 되려 불안해하고, 어떤 의미라도 부여하지 않고 정의하지 않으면 초조해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만 봐도 이렇게 누가 쓰라고도, 써달라고도 하지 않은 글을 잔뜩 써놓은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그게 되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 그 쇼펜하우어는 ‘온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자야말로 존경스럽다.’ 라고 했나보다.
2009.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