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보기 전에 한 생각은 ‘봉준호가 욕심내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천재 천재 하니까 그 눈높이에 맞추려고 과욕 부리지 않았을까?’ 였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은 그 반대다. CJ라는 대자본과 영업, 홍보능력을 등에 업었으니 ‘어떻게 만들어도 본전은 거두겠지.’ 라는 생각으로 만든 것 같다. 대기업 자본갖고 실험을 한 느낌이랄까?
예카테리나 다리에서 새해를 맞기 전까지는 좋았다. 특히, 기차 안에서의 전투는 엄청난 박진감을 선사한다. 기차라는 좁은 공간과 빛과 어둠이라는 요소를 절묘하게 활용함으로써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나이트 비전을 끼고 벌어지는 전투는 흡사 게임을 보는 듯한 시각적 즐거움까지 줬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서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당위성이 부족해 보인다.
애초에 왜 뒷칸 사람들이 혁명을 하려는지 알 수도 없던 상태로 진행되다가, 앞칸 사람들에게 팔을 잃는 아버지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앞칸의 사람들을 악으로 규정한다. 이때부턴 자연스레 악에 대한 저항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막판에 가서는 선과 악의 경계는 종이 한장 차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진부하다 못해 짜증나는 순간이었다.
엔진룸 앞에서 송강호와 다투던 주인공이 갑자기 울먹거리며 자신의 과오를 털어 놓던 모습은 마치 샘 해밀턴이 한국말로 한국식 개그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이럴거면 전부 한국인으로 하던가.
원작에선 기차의 길이가 1001칸 이라고 한다. 그러니, 최후의 인류니 앞칸과 뒷칸이니 하는 규모가 수긍이 간다. 하지만, 영화에선 100칸이고 그나마도 굉장히 건너뛰는 부분이 많다. 기차 안에 수족관이니, 정원이니 잔뜩 있더라만 그게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극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말을 쓰는게 송강호이고 작고 낮게 말하기 때문에 더욱 그의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그의 대사가 무슨 애드립 수준이라 영화에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도 줬다.
좋은 재료로 비비고 나니 맛이 산으로 간 비빔밥 느낌.
2013.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