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추억이 새록새록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니, 미국은 태어나서 작년에 일주일 정도 다녀와 본 거 빼면 뭐 안다고 나에게 그런 일이 있는가 싶지만 정말 그렇다. 이것이 미디어의 영향 아니겠는가. 하도 어려서부터 미국 문화에 노출되다 보니 어느새 물들어 버린 것이다. 어렸을 때 무슨 동네를 돌아 다니면서 두리번 거렸겠는가. 뭐 볼 것도 없었고, 내가 살던 곳은 코딱지 만해서 돌아볼 필요도 없고 집이라기보단 방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어느새 내 본인의 개인적 경험과 추억은 가물가물 해지고 미디어에서 접한 그 무엇들이 베이스로 깔리고, 나이 먹어서 접한 것들이 점층을 이루어 모자이크를 이루어 나가는 식이다. 가령, 얼마전에 본 '머드(2012)' 같은 영화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 영화인 '스탠 바이 미(1986)' 를 상기시키는 식의 연쇄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실제로 두 영화를 본 텀은 1년 정도 밖에 안되는데 말이다.
잡설이 길었는데 아무튼 그게 이 드라마를 보는 나에게 깔린 베이스다.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도 대중문화를 제외하고는 크게 공감하지 못 했던 나에게, 풍경이나 정서로 치자면 이 드라마가 훨씬 친숙한 그 무엇이었다. 즉, 추억이 새록새록하여 흐뭇한 표정 내지는 아련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여기에 초반부터 흡입감을 주는 오프닝과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은 이 드라마를 좋아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유일하게 거부감을 주는 요소라면 제목이 가리키는 그 '무엇' 이다. 근데, 그 무엇을 풀어내는 방식조차 정겹다. 충분히 상상 가능한 추억속 드라마처럼.
개인적으론 여자 주인공 배역이 참 좋았다. 내가 짧은 머리의 여자를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삭발 머리까지도 좋게 본다는 건 이 영화를 보고 알았다. 나중에 긴 머리를 하고 나오니 오히려 어색하고 그랬다. 사실 그런 류의 소녀 캐릭터조차 좀 정형적이긴 하다. 에반게리온의 레이, 레옹의 마틸다 등. 어찌 보면 큰 연기없이 매력을 풍기는 캐릭터. 하지만, 어쩌겠나. 잘 만든 캐릭터에는 애정을 가져주는 게 예의지.
아무튼, 배우 이름은 밀리 바비 브라운 이라는데, 이 작품에선 에일리언4의 위노나 라이더도 연상시켜서 세월을 느끼게도 한다.
2017.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