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대략의 설정은 이렇다.
영화 '1984' 의 윈스턴 스미스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가 있다. 그가 사는 1984년은 영사(영국사회주의당)가 지배하는 나라다. 이들은 온 국민 그중에서도 당원들의 삶을 감시한다. 이때 텔레스크린이라는 장비가 사용된다. 벽걸이형 TV처럼 생겼는데, 이것은 방송이나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지만 당원을 감시, 감청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지금으로 치면 영상통화 비슷한건데, 상대편 모습은 안 보인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기에 감시당하는 자는 항상 긴장하고 살아간다. 윈스턴 스미스는 주인공 답게 현 상황에 의문점을 느끼고 반항심을 갖게 되는데, 그 와중에 오브라이언이라는 자를 믿게 되고 현 체제를 전복하려는 골드슈타인의 형제단이라는 조직에 참여하게 된다. 인류의 미래는 노동자 계층에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과연 윈스턴은 체제를 전복하고 그가 꿈꾸는 세상을 가져 올 수 있을까?
책은 대략 이런 내용이고 요즘도 국가가 하는 감청이나 도청 사건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표현인 '빅 브라더(Big Brother)' 가 등장하는 책이다. 최근 미국이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를 감시한다는 주장과 함께 이 책의 판매도 늘었다고 하니 이 책이 갖는 의미를 엿볼 수 있다. 그만큼 통제하는 사회에 대한 전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읽다 보면 약간 무서운 생각도 든다. 그가 예견한 1984년은 과연 소설 속 세계일 뿐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그런 기시감은 아마 내가 북한이나 과거 나찌, 소련의 만행에 대해서 들었던 일들 때문에 그런 거 같다. 그리고, 이 책은 분명 그러한 역사적 사실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다. 무자비한 전체주의의 미래는 어떤 것이며,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인다.
또, 소설책 치고는 철학적인 내용이 제법 많다. 특히, 오브라이언과의 대화가 그런데 가령 '언어로 존재하지 않는데 그것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철학을 연상케 한다.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하는 소린지 모르겠지만)
그 외에도 유아론인지 뭔지 하는 이론도 등장하는데, 당신이 인식하는 세상 외에 다른 것이 있다고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같은 질문도 던진다. 우리와 비슷한 존재인 윈스턴이 철저하게 논리로 까이는 걸 보면서 과연 내가 저 상황이 된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나을 수 있겠는가 하는 불길함을 선사한다.
그러니, 크게 어렵지 않은 수준에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마치 윈스턴이 오브라이언에게 느꼈을 '저 새끼는 뭔가 달라. 확실히 위대해.' 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아마 조금만 더 어려웠으면 이해도 힘들고 재미도 없었을 책이 됐을 게 분명하다. 몇가지의 소설적 요소를 제외한다면 묵시록이나 다름없는 내용이니까.
지배층의 은밀하고도 치밀한 계략과 평범한 인간들의 수탈의 역사. 역사는 반복된다지? 우리도 눈을 떠야 한다. 빅브라더가 우릴 감시하듯 우리도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다만, 그게 권력에 대한 맹목적 불신이라면 곤란하겠다.
이 책에선 '신어' 라고 하는 요소가 등장한다. 당이 국민들을 훌륭하게 세뇌 시키려면 언어의 역할이 크다는 데서 출발한다. 자유라는 단어가 그저 '공짜(free)' 라는 용도 정도로 쓰이고 그게 몇세대 지속되면 과연 후대인들은 자유가 무엇인지 느낄 수나 있겠는가? 그야 모르지. 아무튼, 영사는 그렇게 믿고 행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부록에 신어의 제작 원칙에 대하여 나오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좀 흥미로운게 있는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신어에는 두 가지 뚜렷한 문법적 특성이 있다. 그 첫 번째 특성은 서로 다른 품사를 거의 자유롭게 바꿔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신어에서는 어떤 단어이든 동사, 명사, 형용사, 부사로 사용될 수 있다.
가령 신어에는 thought(사상)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think(생각하다)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동사와 명사의 역할을 병행한다. 경우에 따라서 원래 명사인 단어가 명사로도 사용되고 동사로도 사용될 수 있다.
품사의 사용이 자유롭다라... 이때 생각나는 문장이 있었으니 바로 Think Diffrent. 애플이 1997년부터 시작했다고 하는 광고 슬로건이다. 원래대로라면 '다름을 생각하라' 로 해석되는 문장을 애플은 '다르게 생각하라' 로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애플은 1984라는 광고로 이슈를 모았다. 실제로는 슈퍼볼 경기중 광고시간에 딱 한번 방송되었다는데 워낙 화제를 모아서 끝없이 방송사가 공유 했다는 그 광고. 이 광고에서 애플은 말하길 1984년이 왜 (책) 1984와 다른지 알게 될 거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서 ibm이 빅브라더고 자기들이 너희들을 해방시켜 주겠다고 말이다. 재밌는 광고다.
이미 30년이나 된 광고 갖고 뭐라 하는 건 아니다. 그냥, 잡스가 늘 강조하던 인문학에 대한 강조는 이러한 감성돋는 느낌 내지는 지적 상승감을 창출 해냈음에 틀림이 없다.
배경이 되는 1984년의 지구는 다음의 그림처럼 나눠져 있다. 나처럼 세계 지리를 잘 모른다면 중간중간 보는 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