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은 역시 연기를 정말 잘하는 것 같다.
말을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애매하게 나오는데, 어느 타이밍에 무언가 말을 한마디 할 것만 같은 느낌을 잘 살렸다. 마치, 총 한 자루가 나오고 그게 언제 쏘아질지 궁금한 느낌이랄까? 어찌보면 맥거핀 효과 같은 것인데 완급 조절이 훌륭해서 영화의 긴장감을 잘 유지시키는 장치가 되었다.
영화의 색감이 참 좋다. 마치, 일본영화나 에니메이션에서 보던 듯한 느낌의 색감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가 여자 감독의 작품이라는 걸 느끼게 해 주는 유일한 요소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떤 영화는 보고 나면 '이거 감독이 여잔가?'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는 그런 느낌은 별로 없었다. 애초에 여자 감독이라는 걸 알고 봐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러닝타임이 짧지 않은데 마치 단편같은 호흡의 느낌이 좋았다. 어떤 영화들은 신선한 재료들을 던져 놓고는 그 재료들을 다 써서 훌륭한 메인디쉬를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훌륭한 재료들을 잘 손질해서 보여주고, '나의 다음 영화가 기대되지?' 하는 느낌으로 끝낸 게 맘에 든다. 데뷔영화라면 이런 미덕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연들의 연기도 참 좋다. 이 영화는 악의 일상성(?) 같은 것들이 그려지는데, 일상적인 연기를 한다는 게 되려 거부감이 드는 경우가 많다. 뭐 굳이 예를 들자면 영화 '아저씨' 에서 김희원이 손도끼로 인질의 머리를 찍더니 '밥 식어. 밥 먹어.' 그런 느낌. 그 영화에선 자연스러웠다만 뭔가 과하게 느껴지지 않나? 그런데, 이 영화에선 그런 느낌이 없다. 조연들의 연기와 오디오가 너무 도드라져, 부드러운 도로를 달리다가 덜컹하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는 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