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2014년에 '호밀밭의 파수꾼' 재번역 해서 출간한다고 한다. 그가 번역한 책은 보지도 못 했지만 번역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민음사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 보면서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도 했었기에 더욱 공감간다.
1. 이 책은 홀든 콜필드라는 청소년의 방황을 그리고 있는데, 뭐 어디 특별한 구석은 하나도 없지만 반항심이 좀 많다. 그러니까, 그의 표현은 쌍욕보다는 약간 눈에 안 띄면서도 불만은 많은 애들 느낌이 나야 할거다. 원서에는 그렇게 불만을 말하면서도 정작 Fuck은 한번도 안 쓴다는데 그게 아마 작가가 생각한 홀든의 터프 레벨일거다. 가령, 학교 다닐때 범생이 같은 애가 화가 나서 갑자기 '제기랄!' 이라고 소리치면 낯선 기분 같은거 말이다. (진짜 거친 놈들은 별 듣도 보도 못한 '니미럴''씌부럴' 같은 욕을 쓰지 않나.)
2. 하루키도 인터뷰에서 말하지만 홀든은 끊임없이 You라고 지칭한다. 예를 들면, '그건 너도 봤어야 해','웃기지 않냐?' 그런 식으로 독자에게 꾸준히 말을 건다. 끊임없이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이 또한 자신감의 결여 내지는 외로움의 표현으로 보면 맞을 것이다. 덕분에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한건 물론이다.
3. 영어는 내가 잘 모르지만 책에선 끊임없이 구어체를 사용한다고 한다. 미국에선 그때 당시의 속어를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도 사용된다고 하고. 그러니까, 지금은 잘 안 쓰는 표현들이 등장한다는 소리일거다. 가령, 당연하다는 말을 할때 10년전에는 '말밥이지' 라는 표현을 많이들 썼다. 당근이라는 소리다. 요즘 같으면 뭐라고 하나. '당근빠따지.' ㅋㅋㅋㅋ 글자로 적으니 왜케 웃기냐.
아무튼, 시대별 속어에 대한 인식에 따라서 책에 대한 이해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홀든이 친구와 대화를 하는데 '말밥이지' 라는 표현을 쓰면 '아, 옛날엔 이런 표현을 썼지..' 라며 추억 내지는 신선함을 느끼는 세대도 있지만, 조금 더 어린 세대로 가면 '이게 다 무슨 소리여' 라고 묻게 되는거다. 그건 바로 몰입도 저하로 이어진다. 문제는 현세대의 표현을 써 버리면 너무 친근해져 버려서 이게 언제 쓴 책인지 감도 안 오게 되버린다. 특히나, 호밀밭의 이 책은 시대상에 대한 부분이 거의 없다. (고등학생이 시대상을 말하면 얼마나 하겠냐만)
4. 이 책은 웃기는 부분이 꽤 많다. 다음을 같이 봐보자.
선생은 듣고 있지도 않았다. 선생은 누가 말할 때 듣는 법이 거의 없다.
"역사에서 널 낙제시킨 건 네가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야."
"그건 압니다, 선생님. 정말이지, 그건 알아요. 선생님도 어쩔 수 없으셨겠죠."
"하나도 없어," 하고 선생은 같은 말을 또 했다. 그런 건 정말 미치겠다니까. 처음에 인정했는데도 어떤 말을 두 번씩 할 때 말이다. 그런데 선생은 세번째 똑같은 말을 했다. "정말 하나도 없어." (후략)
(위의 내용은 개인 번역가가 한 버전이다.) 웃기지 않나? 난 웃긴데. 짧막한 사건이지만 나이 많은 선생과의 갈등을 재밌게 그린 부분이다. 내가 보기엔 정겨워서 웃긴데 그건 아마 내가 고등학교 때 선생들한테 더럽게 쳐 맞아서 그런 걸테고, 이게 사실은 교사라는 존재가 나이 어린 학생을 갈구는 일종의 언어 폭력일거다. 우리나라로 치면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천호진이 권상우를 때리면서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 하던 장면과 비슷한 상황. 이는 문화적 차이로 보인다. 아무튼, 중요한 건 문학적 가치에 앞서서 내용 자체가 공감과 재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밌으니까 위대해진거지, 위대하니까 재밌는 게 아니다. 아무리 위대한 소설이라고 해도 재미가 없었더라면 그게 가당키나 하냐는거지. 애초에 꾹 참고 읽어야 할 고전명작이 아니라, 지금 봐도 재밌는 청소년 방황기에 가까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5. 이 책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그러니까 홀든의 찌질한 기행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치밀한 서사구조, 연출이 아니라 공감도 잘 가고 유려한 문체로 한 청소년의 마음을 디테일하게 잘 따라갔음에 있다는 것이다. 아님 말고. 어느 찌질이의 방황이 왜 문학이 되었는가 보다는 그걸 얼마나 잘 그렸길레? 라는 호기심을 갖고 봐야 할 책이라는 것이다.
정리 해보면.. (더 적고 싶지만 점심을 먹어야 한다) 이 책은 위에 번호를 매긴 항목들을 간과하면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몰입도도 떨어지고, 주제 의식에 대한 몰이해를 낳게 된다. 그러니, 하루키의 책이 기대가 된다는 것이다. 고민해야 마땅한 책이니까.
그런 면에서 -다시 말하지만- 민음사의 책은 너무 점잖고 재미없다. 별다른 고민이 느껴지질 않는다. 클래식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잃은 부분이 커 보인다. 그래서, 난 다른 사람에게 '호밀밭의 파수꾼 재밌긴 한데, 민음사껀 별로야.' 라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