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웨이맨이란?
하이웨이맨이란 (과거, 보통 말을 타고 총을 갖고 다니던) 노상강도를 뜻한다. 또는 이 영화에선 텍사스 레인저였던 경찰이 다시 돌아오며 '하이웨이맨' 즉, 고속도로 순찰대 직위로 돌아오는 걸 표현하기도 함. 즉, 이 영화의 악당과 선한 캐릭터를 동시에 표현하는 중의적인 말인 듯 싶다.
이 영화는 우선 전설적인 범죄자 커플인 '보니 & 클라이드' 를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보니 & 클라이드라는 이름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실제로 그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도 사실 몰랐다.
우선, 중요한 점은 보니가 여자고 클라이드가 남자다. 여러가지 증언들이 있긴 한데 기본적으로 보니가 좀 더 사악한 느낌이라고 보면 맞는 것 같다. 아주 작고 아담한 소녀인 보니가 어쩌다 이런 악마가 되었는가 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기독교적 사회에서 마녀같은 느낌도 준 것 같고..
이제는 거의 한세기 정도로 멀게 느껴지는 일을 다룸에 있어서 추구해야 될 방향은 무엇이었을까?
어느 시대를 풍미한 범죄자들?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당위성?
이 영화는 그냥 그들을 악마로 규정한다. 물론, 그에 대한 반론도 나올 수 있으며 그런 해석은 극중 여러 사람들과 대중들이 보여준다. 누군가는 그들을 영웅시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의적 로빈훗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로빈후드가 평범한 사람의 머리통에 총을 쏘느냐며 참교육을 시켜준다.
일단 보니와 클라이드에 대해서 알아 보긴 하자.
보니와 클라이드는 1930년대 전반에 미국 중서부에서 은행 강도와 살인을 반복한 보니 파커(여), 클라이드 배로(남)로 이루어진 커플입니다. 루이지애나주 경찰에 의해 사살될 때까지 많은 살인에 관여하고 무수한 강도 행각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미국은 금주법과 대공황 하에 있었고, 그 근심을 해소하기 위한 범죄가 자주 일어났다. 그들이 흉악한 범죄자 임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포함하여 그들을 영웅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다. 후에 보니와 클라이드의 범죄는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보니 파커
보니 엘리자베스 파커(Bonnie Elizabeth Parker, 1910년 10월 1일 ~ 1934년 5월 23일)는 1910년 10월 1일 텍사스주 로웨나에서 세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찰스 파커는 벽돌공으로 그녀가 4살 되던 1914년에 사망했다.[1] 그녀의 어머니 에마 크라우스는 아이들과 함께 그녀의 부모가 있는 댈러스 근교의 산업 단지인 시멘트 시티로 이사를 하여, 그곳에서 재봉사로 일을 했다.[2] 그녀의 조부 프랭크 크라우스는 독일 출신이었다.[3] 시멘트 시티는 치안이 나쁘고,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데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사려깊고, 상냥한 성격이었고, 장난도 곧잘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파커는 우등생으로, 글쓰기와 연설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4][5] 성인이 되었어도 글쓰기 좋아하는 그녀의 습성은 〈샐 이야기〉(The Story of Suicide Sal)[6] 와 〈산책로의 끝〉(The Trail's End, 이후 보니와 클라이드 이야기, The Story of Bonnie and Clyde로 알려지게 된다.[7])에 담긴 시적 표현에서 발견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파커는 동급생이었던 레이 손턴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중퇴를 하고, 1926년 9월 25일, 파커의 열여섯 번째 생일을 6일 앞두고 결혼을 한다.[8] 그들의 결혼 생활은 잦은 범법 행위와 감방 출입으로 점철되어 짧게 끝난다. 1929년 1월 이후, 그들은 영원히 결별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이혼을 한 것은 아니었으며, 파커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손턴의 결혼 반지를 끼고 있었다.[9] 1934년 손턴이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조차 그는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의 반응은 “그들이 하던대로 가버렸으니 기쁘다. 잡히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였다.[10]
1929년 결혼이 파경을 맞은 후에, 그리고 1930년 1월 클라이드 배로를 처음 만나기 전에, 파커는 그녀의 엄마와 함께 살면서, 댈러스에서 카페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녀의 단골 고객 중의 한 명이었던 우체국 직원 테드 힘턴은 1932년 댈러스 보안관이 되었으며, 1934년 그녀를 추적하는 대원 중 한 명이었다.[11] 그녀가 1929년 짧게 갈긴 일기장에서, 그녀는 그녀의 외로움과 댈러스 지방에서의 참기 힘든 삶, 그리고 유성 영화에 대한 사랑을 짧게 썼다.[12]
클라이드 배로
클라이드 체스트넛 배로(Clyde Chestnut Barrow, 1909년 3월 24일 ~ 1934년 5월 23일)[13] 는 텍사스주 댈러스 남쪽 타운에 있는 텔리코 근처의 엘리스 군 출신이다.[14][15] 가난한 농부인 아버지 헨리 배질 배로(1874–1957)와 어머니 커미 T. 워커(1874–1943) 사이에 태어난 일곱 남매 중 다섯째 아들이었다. 이들 부부는 1920년대 당시 웨스트 댈러스로 알려진 슬럼가의 빈민이었다가 재정착 물결의 일환으로 댈러스로 이주해왔다. 배로 부부는 웨스트 댈러스에서의 첫 달을 마차에서 살면서 보냈다. 아버지 헨리가 텐트를 살 만큼의 충분한 돈을 벌게 된 것이 가족을 위한 큰 발판이 되었다.[16]
클라이드가 처음으로 체포된 것은 렌터카를 제 때에 돌려주지 못해 경찰로부터 도망치다가 잡혀온 1926년 말이었다. 두 번째는 그의 형 마빈 벅 배로와 함께 훔친 칠면조를 소지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1927년부터 1929년까지 합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금고를 털고, 가게에서 물건과 차량을 훔쳤다. 1928년에서 1929년까지 연달은 체포로, 그는 1930년 4월에 이스트햄 교도소 농장으로 보내진다. 옥살이를 하고 있는 동안, 배로는 자신을 반복적으로 성폭행했던 동료 재소자를 패죽였다.[17] 이것이 클라이드 배로의 첫 살인이었다.
1932년 2월에 가석방되어, 배로는 이스트햄에서 더 단단해지고, 더 독한 범죄자로 거듭났다. 그의 누이 마리는 “뭔가 무서운 것이 교도소에서 일어났었음에 틀림없어요. 그가 출소했을 때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어요”라고 말했다.[18] 동료 재소자였던 랠프 펄츠는 배로가 ‘학생에서 방울뱀으로 변신’하는 것을 자신이 지켜보았다고 증언했다.[19]
그의 이스햄 이력 때문에, 그는 자잘한 직업에 집중했으며, 식료품점, 주유소를 털거나, 이것은 이후 그와 배로 갱이 10~15개의 은행 강도를 재빨리 터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배로가 선호한 무기는 ‘바’(BAR, Browning Automatic Rifle)라고 불리는 M1918 브라우닝 자동 소총이었다. 존 닐 필립스에 따르면, 배로의 삶의 목표는 은행강도로 명성이나 부를 얻는 것이 아니라, 복역을 하는 동안 고통을 준 텍사스 교도소에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20]
첫 만남
그들의 첫 만남을 설명하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가장 신뢰도가 높은 것은 보니 파커가 클라이드 배로를 1930년 1월 5일 친구의 집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파커는 실직 상태였으며, 팔이 부러져 일을 하지 못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웨스트 댈러스에서 머물고 있었다. 파커가 부엌에서 초콜릿을 만들고 있는 동안 배로가 그 여자의 집에 들렀다고 한다.[21]
그들은 처음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끌리게 되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파커가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배로의 범죄 행각에 동참했다고 믿는다. 그들이 범죄를 저지를 때, 파커는 배로의 믿을 수 있는 동료가 되었기에 결국 그들은 끔찍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이 영화는 케빈 코스트너와 우디 해럴슨이라는 뛰어난 배우들이 아주 매력적으로 등장한다. 노쇠했지만 아직도 매력적인 케빈 코스트너와 어디가 트루 디텍티브 느낌도 좀 나는 우디 해럴슨이 두 범죄자를 쫓는 콤비로 등장하여 극을 잘 이끌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