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세계적인 철학자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에 관한 이야기다. 둘은 동시대 사람으로서 언젠가 토론모임에서 만난 일이 있다. 그런데, 그 단한번의 만남에서 비트겐슈타인은 토론 도중 난로의 불쏘시개를 들어서 격한 태도로 위협을 하다가 그곳을 나가버렸다. 과연, 진실은?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의 가문은 오스트리아에서 굉장한 부자였다고 한다. 한 나라에서 두번째 가는 부자였다고 하니 얼마나 부자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 첫번째 부자는 세계 최고의 부자로 유명한 로스차일드 가문이었으니 사실 두번째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 수준이다.
그리고, 보다 더 그에 대한 뚜렷한 특징으로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꼽을 수 있다. 그를 접한 사람들은 그에 대한 선호도에 상관없이 그의 폭발적인 에너지에 이끌리곤 했다고 한다. 마치, 종교의 교주처럼 말이다.
반면 칼 포퍼의 가문도 부자긴 했지만 그보단 좀 아래 수준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한참 아래. 평생 부족할 게 없이 살았던 비트겐슈타인과 달리 칼 포퍼는 인생의 전반기를 대부분 생계에 대한 걱정 속에서 보내야 했다. 쉽게 말해서 자수성가에 가까운 쪽이다. 그는 굉장히 고지식했다. 자신이 한 말이 진리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똥으로 여겼다. 똥, 덩, 어, 리.
이 책은 그들이 왜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즉, 토론이 시작하고서 비트겐슈타인이 그곳을 나가기 전까지의 10분 동안 격하게 대립한 것일까에 대해서 묻고 있다. 그리고, 이런저런 배경과 정황과 증언들을 통해 그 사건에 대하여 되짚어 본다.
칼 포퍼
비트겐슈타인도 칼 포퍼도 잘 몰랐던 나로선 한권의 책으로 추리소설같은 기분과 중간중간 알기 쉽게 철학적 요소에 대하여 설명을 해 준 것이 좋았다. 그리고, 철학에 관한 교과서적이고 딱딱한 내용이 아닌 이런 방식의 전달도 꽤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점수를 매기자면 10점 만점에 9점 정도?
나는 다이어리나 블로그에 철학이 어쩌고 했지만 철학이라는 학문에 관해선 문외한이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도대체 뭘 얻으려는 학문인지도 모르겠다. 내 개인적으로 철학에 대하여 정의를 내려보라고 한다면 ‘수많은 생각들을 조직적으로 연결시키고, 그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하여 풀어 보려는 노력’ 정도로 표현하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질문은 별로 의미가 없거나, 관심 밖의 대상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스피노자의 가르침은 뭘 의미하는 것인가?
어느날 문득 내가 왜 인생을 사는지 궁금해지고,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 보지만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파져오고, 그러던 와중에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라고 하는 게 스피노자가 저 말을 하기까지의 생각의 과정이었다고 한다고 하자.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지만, 철학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자체만으로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물론, 사람들을 혼란스럽게만 하고 명쾌한 답도 못 알려주는 경우도 있는 것 같지만..
아무튼, 철학이란 것은 분명히 생각해 볼 여지가 많고 사람에 따라서는 꽤 재밌게 느낄 수도 있는 학문인 것 같다. 하지만, 돈벌이는 좀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으로 돈을 번다는 것 자체도 좀 우스워 보인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떠든 뒤에 ‘자 이제 돈을 내시오.’ 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달리 말해서, 철학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깨우침이 ‘현인의 가르침이오.’ 라고 생각했다면 좀 더 현인스럽게 공짜로 가르쳐 주는 게 어떨까? 그리고, 그 방법도 돈을 내고 다녀야 하는 대학같은 곳이 아닌 어디 넓찍한 동산 같은 데서 말이다.
그리고, 철학이라는 학문이 다음과 같이 되면 좀 문제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엔 인생의 해답은 이것이오. 그러니, 받아 들이시오.
잘 모르겠다고? 어휴! 당신은 정말 멍청하군!
뭐라고요? 그건 아니지! 당신은 문제를 잘못 이해했어!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한다. 대화가 안 되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경우에 따라선 ‘도대체 저 놈은 뭔 깡으로 저렇게 확신을 하지?’ 라는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얼마전 내가 친구에게서 ‘햐.. 저 놈은 어떻게 저렇게 확신을 하지?’ 하고 탄식을 했던 일처럼 말이다.
경우에 따라선 비트겐슈타인처럼 괴팍한 성격과 자기중심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매력을 발산한 경우도 있다. 물론,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다.
아무튼, 현재의 나로선 ‘철학은 이런거야.’ 라고 결론은 못 내리겠다.
말년의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들의 무리에 대해서 꽤나 환멸을 느낀 듯 하다. 그런 그의 관점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여자애를 좋아한다고 치자. 그런데, 주위에서 ‘와.. 진짜 이쁘다. 어서 고백해 봐!’ 라고 자꾸 부추기면 난 그때부턴 괜히 그 여자의 단점을 찾게 된다. 이런 게 반감이라는 거다.
온전히 혼자만의 것이고, 별다른 이해가 걸려있지 않을 때엔 순수하게 그 과정과 상상을 즐길 수 있는데 다른 이유에 의해서 변질되는 것이다.